38세에 새로 시작한 수채화 취미 입문기

🎨 38세, 난생처음 그림을 그려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림과는 정말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네 그림은 참 독특하다”라는 선생님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칭찬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미술과 담을 쌓고 20년 넘게 살아왔습니다.

근데 올해 초, 회사에서 유난히 힘든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니까 뭔가 허무하더라고요. 퇴근하고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만 하다가 잠드는 생활. 주말엔 밀린 집안일 하다가 끝나는 하루. 제 기억이 맞다면 2월쯤이었을 겁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갑자기 수채화 영상을 띄워줬어요.

맑은 물감이 종이 위에서 번지는 모습을 보는데, 왜인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날 밤 바로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30대 취미, 늦은 나이 그림 시작, 수채화 입문. 그리고 알게 됐죠. 수채화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요. 투명수채화와 과슈(불투명수채화). 사실 저도 처음엔 둘이 뭐가 다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다 물감 아닌가? 싶었거든요.

이 글은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두 가지를 직접 써보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느낀 솔직한 비교 이야기입니다. 혹시 저처럼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해볼까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 투명수채화: 물과 빛이 만드는 우연의 예술

투명수채화란 무엇인가요

투명수채화는 말 그대로 물감이 투명합니다. 종이 위에 색을 올리면 아래 종이의 흰색이 비쳐 보이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밝은 부분은 물감을 칠하지 않고 종이 자체를 남겨둡니다. 처음에 이 개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밝은 곳에 흰색을 칠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투명수채화는 달랐습니다. 밝은 곳을 미리 계획해서 비워둬야 해요. 이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제가 느낀 투명수채화의 매력

일단 색이 정말 맑습니다. 제가 처음 레몬을 그려봤을 때, 노란색 물감이 물에 풀리면서 종이 위에 퍼지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어요. 진짜 빛이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 투명한 발색은 다른 어떤 재료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 우연의 효과가 있습니다. 물을 많이 쓰면 색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지거든요. 처음엔 이게 너무 스트레스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우연이 선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생기는 거예요.

퇴근 후 저녁 시간, 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그 여유. 정확하진 않지만, 그게 제가 수채화에 빠진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투명수채화의 현실적인 단점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진입 장벽이 꽤 있습니다.

첫째, 실수를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감이 투명하니까 덧칠을 해도 아래 색이 비쳐 보여요. 제가 처음 사과를 그릴 때 하이라이트 부분을 깜빡하고 빨간색을 칠해버렸는데, 그 위에 흰색을 올려봤자 핑크색이 되더라고요. 그림 전체를 다시 그려야 했습니다.

둘째, 종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저렴한 스케치북에 그렸더니 물감이 안 번지고 얼룩이 생겼어요. 알고 보니 수채화 전용 종이를 써야 한다더군요. 전용 종이가 생각보다 비쌉니다. A4 크기 한 장에 천 원이 넘는 것도 있어요.

셋째, 마르는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층층이 색을 올리는 기법을 쓰려면 앞에 칠한 게 완전히 말라야 해요. 급한 성격인 저에겐 이게 고문이었습니다. 한번은 기다리다 못해 드라이기로 말렸는데, 색이 이상하게 변해버렸어요.

🖌️ 과슈(불투명수채화): 덮고 고치고 다시 시작하는 자유

과슈는 어떤 물감인가요

과슈는 불투명 수채화라고도 불립니다. 똑같이 물로 개서 쓰는 물감인데, 색이 불투명해서 아래 색을 완전히 덮을 수 있어요. 유화의 발색과 수채화의 편리함을 합쳐놓은 느낌이랄까요.

애니메이션 배경이나 일러스트에서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지브리 영화 배경도 과슈로 그린 게 많다고 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더 관심이 생겼습니다.

과슈를 써보고 느낀 점

일단 너무 편했습니다.

실수해도 그 위에 다른 색을 덮으면 됩니다. 투명수채화에서 그렇게 스트레스받았던 하이라이트 문제? 과슈는 마지막에 흰색으로 쿡쿡 찍어주면 끝이에요. 이게 얼마나 마음 편한 일인지 모릅니다.

또 종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습니다. 물론 좋은 종이가 더 좋긴 하지만, 그냥 일반 도화지에 그려도 나름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어요. 초보자에게 이건 정말 큰 장점입니다. 비싼 종이에 그림 망칠까 봐 손이 떨리는 그 느낌, 안 겪어보신 분은 모르실 거예요.

색감도 달랐습니다. 투명수채화의 맑은 느낌과는 다르게, 과슈는 좀 더 묵직하고 매트한 느낌이에요. 팝아트 같은 그림이나 동화 일러스트 스타일을 좋아하시면 과슈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과슈의 아쉬운 점들

물론 과슈도 완벽하진 않았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마르면 색이 달라진다는 점이에요. 칠할 때는 진한 파란색이었는데 마르고 나면 좀 탁해지거나 연해집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체감상 10~20% 정도 색이 변하는 것 같아요. 처음엔 이게 너무 헷갈렸습니다. 분명 진하게 칠했는데 왜 이렇게 흐려졌지? 싶었거든요.

그리고 투명수채화 특유의 “물이 번지면서 만드는 우연한 아름다움”은 과슈에서 느끼기 어렵습니다. 색이 불투명하다 보니 물을 많이 써도 그렇게 예쁘게 번지지 않아요. 스며드는 느낌보다 얹어지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또 하나, 층층이 올리다 보면 표면이 두꺼워집니다. 유화처럼 텍스처가 생기는 건 장점일 수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수채화 특유의 가벼운 느낌을 좋아해서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 직접 써보고 느낀 진짜 차이점

그림 그리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두 달 정도 번갈아가며 써보니까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이건 단순히 투명하냐 불투명하냐의 차이가 아니에요. 그림을 그리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지더라고요.

투명수채화는 빼는 그림입니다. 밝은 곳을 비워두고, 어두운 곳을 점점 쌓아가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많이 세워야 합니다. 어디를 남겨둘지, 어떤 순서로 칠할지. 저처럼 성격 급한 사람에게는 인내심 수련이 됐습니다.

과슈는 더하는 그림입니다. 일단 칠하고, 고치고, 덮고, 다시 올리고. 좀 더 직관적이에요. 생각나는 대로 붓을 움직여도 나중에 수정이 가능하니까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실수가 두려운 분들에게 이 자유로움은 정말 큰 선물입니다.

완성작의 분위기도 확연히 다릅니다

똑같은 꽃을 그려도 느낌이 달라요.

투명수채화로 그린 꽃은 햇살에 비친 것 같은, 어딘가 몽환적인 분위기가 납니다. 색과 색 사이에 물이 만든 그라데이션이 있고, 종이의 흰색이 빛처럼 살아있어요. 시 한 편 같은 느낌이랄까요.

과슈로 그린 꽃은 좀 더 선명하고 또렷합니다. 동화책 일러스트 같은 느낌이에요. 색이 확실하고, 형태가 명확하고, 뭔가 귀엽고 팝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엽서나 굿즈로 만들기엔 과슈 그림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준비물과 가격 차이

제가 실제로 구매한 것들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초기 비용은 과슈가 조금 더 들었습니다. 투명수채 물감은 12색 기준 2만 원대에 괜찮은 걸 살 수 있었는데, 과슈는 젤리 과슈라고 불리는 제품이 유행이라 그런지 3-4만 원대 제품을 많이 추천하더라고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투명수채화는 종이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300g짜리 면 수채화지를 쓰라고 하는데, 이게 A4 사이즈 20장에 2만 원 넘게 해요. 연습할 때마다 천 원짜리 종이를 쓴다고 생각하면 좀 부담됩니다.

과슈는 그냥 도화지에 그려도 되니까 종이 스트레스가 덜해요. 장기적으로 보면 비슷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배우기 난이도는 어떨까요

개인적인 의견인데, 과슈가 확실히 배우기 쉬웠습니다.

투명수채화는 “물 조절”이라는 넘어야 할 산이 있어요. 물이 너무 많으면 색이 옅어지고, 너무 적으면 안 번지고. 이 감을 잡는 데 저는 한 달 넘게 걸린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끔 실패하고요.

과슈는 물감 농도만 적당히 맞추면 됩니다. 아크릴 물감처럼 쓰면 되니까 직관적이에요. 유튜브 보면서 따라 그리기도 훨씬 수월했습니다.

💭 그래서 저는 무엇을 선택했을까요

정답은 “둘 다”입니다.

웃기죠? 비교 글이라면서 하나를 고르지 않다니. 근데 정말 그랬어요.

평일 저녁, 피곤하고 머리 쓰기 싫을 때는 과슈를 꺼내듭니다. 생각 없이 붓을 움직여도 되니까요. 실수해도 되고, 못생겨도 되고. 그냥 색을 칠하는 행위 자체가 힐링이 됩니다.

주말 오후, 시간 여유가 있고 마음이 고요할 때는 투명수채화를 합니다. 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창밖을 보고, 색이 번지는 걸 구경하고. 그 느긋한 시간이 명상 같아요.

두 가지가 주는 감정이 다릅니다. 과슈는 활력을, 투명수채화는 평온을 줍니다.

🌟 어떤 분께 투명수채화가 맞을까요

아래 내용에 해당하시면 투명수채화로 시작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은은하고 맑은 색감을 좋아하시는 분. 인상파 그림이나 수채화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끌리신다면 투명수채화가 맞습니다.
  • 과정 자체를 즐기고 싶으신 분. 결과물보다 물이 번지고 마르는 그 시간을 감상하고 싶다면 투명수채화의 매력에 빠지실 거예요.
  •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시는 분. 그림을 그리기 전에 스케치하고, 어디를 칠하고 어디를 남길지 생각하는 게 즐거운 분들에게 어울립니다.
  • 느린 호흡을 원하시는 분. 바쁜 일상에서 일부러 천천히 가는 시간을 갖고 싶다면, 투명수채화의 기다림이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 실패도 우연의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 예상대로 안 돼도 “이것도 멋지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투명수채화와 잘 맞으실 겁니다.

🎀 어떤 분께 과슈가 맞을까요

반대로 아래 내용에 해당하시면 과슈를 먼저 추천드립니다.

  • 실수가 두려워서 시작을 못 하고 계신 분. 지우고 덮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붓을 드는 용기가 생깁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 선명하고 또렷한 그림체를 좋아하시는 분. 동화 일러스트, 팝아트, 귀여운 캐릭터 그리기에 관심 있으시다면 과슈가 더 맞습니다.
  • 결과물을 활용하고 싶으신 분. 엽서 만들기, 굿즈 제작, SNS 업로드 등 완성작을 적극적으로 쓰고 싶다면 과슈의 선명함이 유리해요.
  •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하고 싶으신 분. 마르는 시간이 짧고 수정이 가능하니까, 퇴근 후 1시간 안에 뭔가를 완성하는 성취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 완벽주의 성향이 있으신 분. 고치고 또 고치고 싶은 마음, 과슈는 받아줍니다. 만족할 때까지 덧칠해도 괜찮아요.

📝 38세, 늦었다고 생각한 시작이 가장 좋은 시작이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벌써 4개월이 지났더라고요.

아직도 그림 실력은 초보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엔 부끄럽고, 누구에게 보여주기엔 쑥스럽고. 근데 이상하게 행복합니다.

예전에는 퇴근하고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만 보다가 잠들었는데, 요즘은 물통 준비하고 팔레트 꺼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11시예요.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 취미는 처음입니다.

38세에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게 두려웠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가끔 “내가 이 나이에 이걸 왜 하고 있지?” 싶을 때가 있어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나이는 정말 아무 상관없더라고요.

오히려 이 나이라서 좋은 것도 있었습니다.

20대였으면 남들과 비교하면서 조급했을 것 같아요. 빨리 늘어야 한다, 잘 그려야 한다, 이런 압박감에 힘들었을 거예요. 지금은 그냥 “나 혼자 즐거우면 됐지”라는 마음이 있거든요. 이 여유는 나이가 주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투명수채화든 과슈든, 사실 뭘 선택하시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하는 것. 저도 여전히 실패하고, 망치고, 그래도 다음 날 또 그립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 “나도 뭔가 새로운 걸 해볼까?”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냥 시작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못 그려도 됩니다. 느려도 됩니다.

중요한 건 붓을 드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화가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저는 퇴근하고 물통에 물을 받을 예정입니다. 오늘은 투명수채화로 창밖에 보이는 가로등을 그려볼까 해요. 잘 될지 모르겠지만, 뭐 어때요. 망쳐도 내일 또 그리면 되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혹시 수채화 시작하시게 되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같이 응원하면서 그려봐요. 우리 모두 늦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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