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저녁 한강 산책, 혼자 가도 외롭지 않은 이유

한강 여름 산책

🌇 여름 저녁 한강 산책, 혼자 가도 외롭지 않은 이유

이 글을 쓰게 된 건 사실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됐습니다. 퇴근하고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집으로 곧장 걸어가는 발길이 왠지 그날따라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에어컨 바람 속에서 하루 종일 화면만 들여다보다 나온 탓인지, 몸은 피곤한데 눈만 이상하게 초롱초롱한 그 느낌. 아마 직장생활 좀 해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 겁니다. 집에 가봤자 뭔가 허전하고, 그렇다고 약속을 잡기엔 너무 지쳐있는 그 애매한 상태요.

그날 저는 무작정 한강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지도도 켜지 않고. 근데 막상 강변에 도착했을 때, 뭔가 이상하게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불었고, 강물 냄새가 났고, 저 멀리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냥,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강을 바라봤습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어딘가 충전이 되는 것 같은 기분.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여름 저녁 한강 산책이 제 작은 루틴이 된 게.

근데 재미있는 건, 저처럼 혼자 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분위기가 두 가지로 나뉘더라고요. 한쪽은 뭔가를 적극적으로 즐기러 온 사람들, 또 한쪽은 그냥 조용히 걷거나 앉아서 숨을 고르러 온 사람들. 저도 이 두 가지 방식을 다 경험해봤고, 오늘은 그 비교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어떤 한강이 나한테 맞는 한강인지, 한번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 A타입: 활동형 한강 산책 — 뭔가를 하러 가는 한강

📍 이런 분위기입니다

처음 여름 한강에 혼자 나갔을 때, 저는 솔직히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있으면 이상하잖아요. 혼자 강가에 멍하니 앉아있으면 누군가 쳐다볼 것 같고, 뭔가 불쌍해 보일 것 같고. 그래서 저도 처음엔 이어폰 꽂고 조깅을 흉내내거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이랑 컵라면 사서 돗자리 깔고 앉아보기도 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한강 피크닉’ 버전이죠.

이 방식에는 분명한 매력이 있습니다. 일단 시간이 잘 갑니다. 먹을 것도 있고, 음악도 있고, 주변 사람들 구경도 되고. 여름 저녁 한강은 사실 볼거리가 정말 많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물 근처에서 첨벙거리고, 연인들이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고, 중년 아저씨들은 치킨을 뜯으면서 소주를 마십니다. 그 모든 풍경이 엄청나게 생생하고 활기차서, 혼자 와도 심심하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습니다.

자전거 대여를 해서 한강변을 달리는 것도 이 타입에 속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여러 대여소에서 시간당 빌릴 수 있었는데, 여름 저녁 바람을 맞으면서 페달을 밟으면 진짜 기분이 완전히 다릅니다. 땀이 나는데도 기분 좋은 그 상태. 운동을 한 것 같은 성취감도 생기고, 강을 따라 흘러가는 노을도 보이고. 무언가를 ‘하면서’ 한강을 즐기는 방식이라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입니다.

💔 근데 이런 점이 아쉬웠습니다

솔직히 말할게요. 활동형 한강 산책, 저한테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먹을 걸 들고 앉아있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 공허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주변은 다 무리지어 있고, 나는 혼자 맥주 캔을 기울이고 있는 그 장면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의식되는 순간이요.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오히려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자전거도 처음엔 신났는데, 어느 순간 이게 즐거움인지 의무인지 헷갈리더라고요. 운동화 신고 오지 않아서 발이 불편하기도 했고, 자전거 반납 시간을 신경 쓰다 보니 마음이 자꾸 시계로 갔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하느라 정작 강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느낌. 분명 한강에 있었는데 한강을 즐기지 못한 이상한 기분. 이게 활동형 산책의 가장 아이러니한 단점인 것 같습니다.

🌙 B타입: 조용한 걷기형 한강 산책 — 그냥 있으러 가는 한강

🍃 이런 분위기입니다

어느 날 저는 완전히 반대로 해봤습니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이어폰도 꽂지 않고, 그냥 강변 산책로를 천천히 걷는 것. 처음엔 불안했습니다. 이거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안 하면서 거기 있는 게 말이 돼? 근데 막상 해보니까 전혀 달랐습니다.

여름 저녁 한강의 빛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때 처음 제대로 봤습니다. 해가 지기 직전, 강물 위에 주황색이랑 분홍색이 섞이는 그 시간. 사진으로 담으면 절대 그 느낌이 안 납니다. 눈으로 보고, 피부로 바람을 느끼고, 멀리서 물소리랑 사람 소리가 뒤섞이는 걸 귀로 듣는 그 전체적인 감각. 뭔가를 먹거나 타거나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했습니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정리됩니다. 아무 생각도 안 해야지 하는데 막상 걷다 보면 이상하게 그날 있었던 일들이 저절로 정리가 되고, 고민들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 정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강물이 계속 흘러가는 걸 보다 보면 나도 뭔가 흘려보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강은 저한테 일종의 대화 상대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말은 안 하지만 들어주는 것 같은.

특히 여름 저녁이라는 계절감이 이 조용한 걷기 방식과 엄청나게 잘 맞습니다. 낮의 열기가 조금 가라앉으면서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그 시간,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는 풍경. 그 안에서 그냥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그냥 그 순간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 이런 점은 아쉬웠습니다

조용한 걷기형도 물론 단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건 체력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은근히 오래 걷게 되거든요. 저는 어느 날 너무 멀리까지 걸어버려서 돌아오는 길에 발이 너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름이라 열기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오래 걸으면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큽니다. 물을 꼭 챙겨야 한다는 것도 이 방식의 주의사항입니다.

또, 마음 상태에 따라 이 방식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말 깊은 슬픔이나 무거운 감정을 안고 갔을 때, 혼자 조용히 걷는 게 오히려 그 감정을 더 크게 키울 수도 있거든요. 강물을 바라보면서 생각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다행인데, 어떤 날은 외로움이 더 선명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솔직히 이 방식이 별로였습니다. 혼자 있는 게 충전이 아니라 고립감으로 느껴지는 날이 있거든요.

🔍 직접 두 방식을 다 해보고 느낀 진짜 차이점

처음엔 단순히 ‘뭔가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진짜 차이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바로 ‘내가 지금 무엇을 채우러 나왔는가’의 문제였습니다.

활동형 산책은 자극을 채우러 갈 때 맞습니다. 집에만 있다가 몸이 근질근질하거나, 뭔가 신나는 게 필요할 때, 또는 같이 시간을 보낼 친구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고독도 원하지 않을 때. 주변의 활기찬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나도 그 안에 섞여 있는 느낌이 필요한 날에 맞습니다. 뭔가를 ‘하면서’ 있기 때문에 혼자라는 사실이 상대적으로 덜 의식됩니다.

조용한 걷기형은 반대입니다. 자극을 빼러 갈 때 맞습니다. 하루 종일 너무 많은 것들을 처리했고, 너무 많은 말을 들었고, 너무 많은 화면을 봤을 때. 머릿속이 소음으로 꽉 찬 느낌일 때. 그때 뭔가를 더 채우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그냥 비워야 합니다. 걷는다는 행위 하나에만 집중하면서, 나머지를 다 흘려보내는 것. 그게 이 방식의 핵심입니다.

두 방식의 또 다른 차이는 ‘기억에 남는 방식’입니다. 활동형은 특정 장면이 기억납니다. 그날 먹었던 편의점 컵라면, 자전거 타다가 넘어질 뻔한 순간, 같이 앉아있던 옆 자리 커플이 싸우던 소리.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에피소드들이 남습니다. 반면 조용한 걷기형은 감각이 기억납니다. 그날 바람의 온도, 강물 색깔, 발바닥에 느껴지던 보도블록의 감촉. 장면보다 느낌이 오래 남습니다. 어느 게 더 좋다는 게 아니라, 이게 진짜 다른 경험이라는 거죠.

💡 어떤 분께 어느 방식이 맞을까요

🎒 활동형 한강 산책이 맞는 분

  • 혼자지만 심심한 건 싫은 분. 혼자 있고는 싶은데 완전한 정적이 불편한 분이라면 활동형이 훨씬 편합니다.
  •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풀리는 타입. 걱정이 있을 때 걷거나 움직이면 해소되는 분이라면 자전거나 가벼운 조깅이 효과적입니다.
  • 한강을 ‘놀러 가는’ 개념으로 보는 분. 쉬러 간다기보다 즐기러 간다는 마인드라면 편의점 피크닉이 딱입니다. 뭔가 먹으면서 사람들 구경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되거든요.
  • 기분전환이 목적인 분. 집에서 오래 있었고, 어딘가로 나가고 싶었던 충동이 있었던 날. 그날은 활동형이 더 잘 맞습니다.

🌿 조용한 걷기형 한강 산책이 맞는 분

  • 오늘 하루 너무 많은 것들을 처리한 분. 말도 많이 했고, 결정도 많이 해야 했고, 감정 소모도 컸던 날. 그날은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회복이 됩니다.
  •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고 그 시간이 필요한 분. 저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회복하는 내향형이라면 이 방식이 훨씬 잘 맞습니다.
  • 계절 감성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분. 여름 저녁 한강의 그 특유의 빛과 바람을 제대로 느끼려면 뭔가를 하면서 있으면 안 됩니다. 그냥 있어야 느껴집니다.
  • 감정을 정리하고 싶은 분. 단,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너무 깊은 감정 상태일 때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그 점은 주의하시면 좋겠습니다.

🌟 마무리하며 —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이유

여름 저녁 한강에 혼자 나가면 외롭지 않냐고, 가끔 지인들이 묻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하면, 어떤 날은 외롭습니다. 주변에 다 무리지어 있는데 나만 혼자인 그 장면이 선명하게 의식되는 날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근데요. 그게 나쁜 게 아니더라고요. 외롭다는 감각도 결국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솔직한 신호잖아요. 그 감각을 밀어내지 않고 그냥 옆에 두고 같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외로움인지 자유인지 모호해집니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저는 그 경계 어딘가에 한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38살이 되면서 느끼는 건, 혼자 있는 시간을 버티는 것과 즐기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라는 겁니다. 예전엔 혼자 있으면 어딘가 불안했습니다. 뭔가를 놓치는 것 같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근데 지금은 혼자서 한강 나가는 게 오히려 나한테 주는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누구한테도 맞추지 않아도 되는 그 몇 시간.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그냥 같이 흘러가는 느낌.

어쩌면 한강 산책이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건, 한강 자체가 거대한 동반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말도 없고, 판단도 없고, 그냥 늘 거기 있는 것. 서울 한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면서, 오늘도 지친 사람들 옆에 조용히 있어주는 것. 정확하진 않지만, 저는 그 감각 때문에 계속 한강으로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 퇴근길이 유독 무겁다면, 그냥 한강 쪽으로 걸어가 보셨으면 합니다. 활동형이든 조용한 걷기형이든, 일단 거기 가기만 해도 반은 된 것입니다. 한강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생각보다 훨씬 따뜻한 곳입니다. 혼자 가도, 충분히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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